[뉴스]비치발리볼불모지에서도시은미-신지은이꿈을키우는이유 > 스포츠뉴스

훈련장부터 공, 유니폼은 물론 전지훈련, 국제대회 출전까지 오롯이 두 선수가 직접 발로 뛰며 준비하고 있다. 비치발리볼 불모지를 개척 중인 이들이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시은미와 신지은이 비치발리볼 꿈을 키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6년 만에 다시 비치발리볼을 시작한 시은미
세터 출신의 시은미는 2008년 V-리그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1순위로 GS칼텍스 지명을 받고 프로 무대에 올랐다. 2016년에는 KGC인삼공사(현 정관장)로 이적해 두 시즌을 보냈고, 그렇게 2018년 V-리그를 떠났다. 프로에서 10시즌을 보낸 시은미는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비치발리볼에 도전장을 냈다. 최종적으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으면서 실업팀 수원시청 유니폼을 입었다.

시은미는 수원시청과 양산시청을 거쳐 2020년 배구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은퇴를 하고 나서 더 오래 못 쉬었다. 쉬는 것이 불안했다. 한 달만 쉬고 바로 필라테스 자격증을 땄다”고 전했다. 필라테스 강사로 일을 하는 것도 즐거웠다. 누군가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일에 재미를 느낀 것. 다만 지난해 12월 비치발리볼을 다시 시작하면서 훈련을 위해 필라테스 강사를 더 이상 할 수는 없었다. 훈련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는 유소년 배구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시은미는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일도 좋았다. 그럼에도 필라테스 강사로 출근하는 것과 배구 코트장을 갈 때의 마음이 달랐다. 설레는 마음이 더 컸다. 운동선수로 뛴 시간이 더 많았다. 선수로 뛰었을 때 느끼는 희열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은이한테 연락이 왔을 때도 더 늦기 전에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처음 비치발리볼을 접했을 때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배구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며 6년 만에 다시 비치발리볼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신지은, 일찌감치 프로행이 아닌 비치발리볼을 택하다
2001년생 신지은은 대구여고 3학년까지 배구 선수였다. 여느 선수들이 그랬듯 V-리그 드래프트 신청서까지 냈다. 하지만 드래프트 이전에 비치발리볼 제안을 받고 전향하게 됐다. 지금도 신지은은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신지은은 “사실 프로팀에 가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비치발리볼 선수가 되기로 했고, 여전히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당차게 말했다.

물론 비치발리볼 선수로서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도 컸다. 신지은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 유학을 가서 비치발리볼 선수 생활을 길게 이어가려고 했다.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중국에서의 운동 환경도 좋았다. 중국에는 여러 선수들과 팀도 있어서 같이 집중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유학 계획이 틀어졌다. 그 때는 잠시 ‘내 선택이 잘못됐나’는 생각도 들었다”면서도 운명론을 내세웠다. 그는 “그만두려고 생각까지 했는데 경일대에 비치발리볼팀이 창단되면서 다시 도전을 하게 됐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다시 그만할까 고민했다.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조금은 이슈가 되면서 여러 후원을 받기도 했다. 운명인가 싶다. 지금은 흘러가는 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신지은은 작년에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미녀 선수’로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덕분에 비치발리볼과 ‘신지은’ 이름을 조금이나마 알리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여러 업체로부터 후원을 받으면서 비치발리볼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신지은은 그 파트너로 시은미를 택했다.

벌써부터 호흡이 척척! 비치발리볼 듀오 시은미-신지은
새 파트너 찾기에 나선 신지은은 시은미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프로 무대에서도 10시즌을 보냈고, 비치발리볼 경험이 있는 시은미와 새로운 시작에 나선 셈이다. 신지은은 “아까도 말했듯 비치발리볼은 한국에서 할 수 없는 종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기회를 얻기 시작하면서 욕심이 생기더라. 가장 먼저 나랑 마음이 잘 맞고, 나처럼 열정적으로 뛸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았다. 비치발리볼 선수 경력도 있고, 비치발리볼과 배구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는데 언니가 그랬다. 고심 끝에 언니한테 같이 하자고 전화를 먼저 하고 나중에 만나게 됐다”며 시은미와 짝을 이루게 된 이유를 밝혔다.

시은미도 신지은의 전화 한 통이 반가웠다. 시은미는 “선수로서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못 이룬 것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이가 있어서 고민을 했다. 다시 은퇴한 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도 됐다. 운동을 쉰 시간이 길어서 ‘내가 체력을 끌어 올려서 모래 위에서 뛸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내가 민폐가 될까봐 우려스럽기도 했다”면서 “그런데 지은이랑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진심이 느껴지더라. 나도 좀 더 선수로 뛰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팀 후원을 받아서 2026년 나고야 아시안게임까지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들어왔다”며 힘줘 말했다.

세터 출신의 시은미와 아웃사이드 히터로 배구 선수 생활을 했던 신지은이 만났다.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사이다. 신지은은 “난 공격수 출신이라 받고 때리는 것은 괜찮은데, 이단 연결이 불안했다. 이를 언니가 채워주고, 내게도 가르쳐준다. 서로 배우는 것이 많다”며 “또 서로 배구 센스가 좋다. 서로 말도 엄청 많다. 비치발리볼은 2명이 뛰는 것이라 서로 사인을 잘 주고 받으면서 뛰어야 한다”며 시은미-신지은의 장점에 대해 강조했다.

시은미도 “난 세터 출신이라 리시브, 공격적인 면은 약할텐데 지은이가 그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운동 성향도 비슷해서 잘 맞는다”면서 “비치발리볼은 두 명이 넓은 코트를 쓰기 때문에 어느 상황에서 어디가 비웠는지 계속 생각을 하면서 플레이를 해야 한다. 우리도 상대를 속여야 하고, 상대도 우리를 속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지은은 “비치발리볼은 키 제약이 덜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다. 코트를 잘 보고 배구 기술, 센스가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며 비치발리볼의 매력을 설명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열악한 환경에서도 꿈을 키우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도 시은미와 신지은의 도전은 계속된다. 두 선수는 주 4~5회 잠실에 위치한 모래 코트를 이용한다. 하루에 2시간 정도 쓴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개별적으로 하고 있다. 코칭스태프 혹은 다른 선수 없이 단 2명이서 볼 훈련을 하다보니 제약이 많다. 시은미는 “다른 비인기 종목은 구장이나 연습할 곳은 다 있다. 우리는 잠실에서 직접 간이 네트를 직접 설치해서 훈련 중이다. 2명이라 기본기 연습, 찬스볼 때리는 정도만 할 수 있다. 가끔 배구인이 도와줄 때도 있다. 또 아무래도 근력이나 점프가 중요하기 때문에 모래에서 점프 훈련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신지은은 “다 개인 훈련이다. 또 훈련장은 우리가 독점으로 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따로 샤워시설도 없어서 운동이 끝나면 모래를 묻힌 상태에서 각자 차를 운전해서 2시간 정도 간다. 일본 선수들처럼 해변가 근처에 머물 수 있으면 보다 환경이 나을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또 펜스가 따로 마련돼있지 않아서 하나 연습하면 공을 주워가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국제대회 정보를 얻는 것조차 어렵다. 자비로 대회에 출전해 해외 비치발리볼 선수, 감독 등과 소통을 하며 몰랐던 정보를 듣고 있다. 신지은은 “올해 4월에 필리핀 대회를 갔었다. 매년 기술 규칙이 새롭게 업로드된다. 대회에 나가서 다른 선수들, 코치들한테 물어보고 있다. 또 가서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해외에 가서 배워오고 있다”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시은미도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 직접 찾아야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도 아무래도 프로에서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에 맞춰 운동을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코칭을 받을 수도 없다. 여러 영상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7월 중순에는 4박 5일로 일본 전지훈련을 떠난다. 일본 비치발리볼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가나가와현 히라스카에서 구슬땀을 흘릴 예정이다. 신지은은 “아시아에서는 일본 비치발리볼이 가장 활성화돼있다. 일본 내에서도 대회가 많이 열린다. 인프라가 구축돼있기 때문에 경쟁할 수 있는 동료들도 많다.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일본에서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직 배움이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해서 일본 친구한테 도움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시은미도 “해외 선수들을 보면 모래에서도 배구처럼 스텝을 하는데도 점프가 잘 된다. 그런 부분을 배우고 싶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국내 대회는 없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자비로 나서야 한다. 이 상황에서 훈련한 것들을 점검하고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전지훈련을 계획했다. 시은미는 “계속 실전 경험을 쌓고 유지를 해야 하는데 이 점이 가장 어렵다”고 밝혔다. 일본 비치발리볼 선수들도 이들의 부탁에 흔쾌히 수락을 했다. 신지은은 “처음에 연습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같이 연습할 수 있냐고 물었다. 코치님한테 물어본다고 하더라. 코치님과도 친분이 있다. 괜찮다고 하셔서 가게 됐다. 이 친구들은 해변에 비치 코트 센터가 따로 있어서 환경이 좋다. 코트도 여러 개다. 가서 배우고 싶다”며 힘줘 말했다.

“증명하고 싶다” 2026 아이치·나고야 AG를 바라보다
여전히 둘만의 힘으로 훈련을 통해 실력을 갈고 닦고 있다. 목표는 2026년에 개최되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다. 시은미는 “배구도 지금 선수 수혈부터 어렵다고 하는데, 비치발리볼은 그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다. 배구와는 다른 종목이지만 연관성이 있으니 활성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선수로서는 나고야 아시안게임까지 지은이랑 훈련 열심히 해서 성적까지 내는 것이 마지막 목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선수 시은미의 목표를 설정했다.

신지은은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매일 핑계만 댔던 것 같다. 이제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먼저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 됐으면 했기에 그 환경을 먼저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면서 “감사하게도 항저우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후원 업체가 생겼다. 아레나에서는 경기 유니폼 등 의류 지원을 받고 있고, 익스트림과 NS 등 후원을 받으면서 필리핀 대회도 다녀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시은미도 “올해는 처음으로 팀 후원을 받게 됐다. 라임트리라는 곳에서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로 했다. 덕분에 좀 더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마냥 꿈만 좇는 것은 아니다. 신지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한국 선수들도 기본기가 좋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종목이다. 일본도 비슷하다. 이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빠르게 경쟁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비치발리볼을 하고 싶다”면서 “이 환경 속에서도 대회에 나가면 세트도 가져오고, 경기력이 나온다. 나도 신기할 때가 있다”며 변화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배구 대표팀과 마찬가지로 비치발리볼 역시 랭킹 포인트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FIVB 비치발리볼 세계랭킹을 살펴보면 브라질,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국적의 선수들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선수들이 8위에 랭크돼있다. 중국에 이어 호주, 태국, 일본, 뉴질랜드 국적의 선수들이 차례대로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아시아 내에서도 최하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신지은은 “랭킹 포인트가 높으면 랭킹에 따라 대회 출전 시 숙소, 항공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본선에 올라갈 확률도 높다. 포인트가 낮으면 예선 경기만 치를 수밖에 없고, 경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지난 4월 대회에도 한 경기 치르고 끝났다”며 랭킹 포인트를 강조했다.

시은미와 신지은 외에도 비치발리볼 선수로 뛰고 싶은 선수들은 즐비하다. 다만 생계를 유지하면서 병행할 수 없는 환경이기에 포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지은은 “이렇게 지금하는 인터뷰, 후원 받고 대회에 출전하는 것 등 다른 비치발리볼 선수들도 꿈꿨던 것이었다. 나도 그랬다. 이를 우리가 실현 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꿈을 꾸는 사람들도 비치발리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먼저 이끌어가고자 하는 마음도 크다”며 원대한 꿈을 전하기도 했다. 시은미도 “일단 성적이 나야 한다. 우리가 자부심을 갖고 임해야 후배들도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지은은 올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 그는 “교육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휴학도 고민했지만 지금은 병행 중이다. 동기들은 다들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교직 자격증을 획득하려고 한다. 나도 교직 자격증을 따서 선생님이 되려고 한다”고 말했다.

비치발리볼 선수로서 꿈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시은미와 신지은이다. 사막과 같은 ‘비치발리볼 불모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화려한 꽃을 피울 날을 기대해본다.

글. 이보미 기자
사진. 박상혁 기자, 선수 제공
디자인. 최인혜 디자이너

(본 기사는 <더스파이크> 7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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