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발상의 땅을 빼앗긴 크나큰 실수
조회 : 949
추천 : 5
24-05-13 11:00
조회 : 949
추천 : 5
24-05-13 11:00
페이지 정보
본문
요동반도에서 발원한 고조선이
삼국시대 발해를 거쳐서
발해가 망하고 나서도 발해/고구려의 후손 중 하나인 여진족 말갈족 만주족들이 살던 땅을
저 머나먼 몽골에서 잡아먹고
원말 명초 교체기때 고려에서 쌍성 총관부는 잡았고
동녕부도 거의 다 먹었지만....
==================
初城陷 我軍火倉廩殆盡 由是 軍中乏食。
성이 함락되었을 때 아군이 창고에 불을 놓아 거의 다 태워버렸기 때문에 군영 내에 식량이 모자랐다.
《고려사》 지용수 열전
처음에 성이 함락되자, 우리 군사가 창름(倉廩)을 거의 다 불질러 양식을 취할 데가 없었다.
《동국통감》 권 49 고려기 공민왕 19년
이 전투에서 가장 결정적인 실책은 전투를 벌이다가 실수로 성 내의 군량고에 불이 붙어 군량이 죄다 타버렸다는 점이었다. 가져온 식량이 떨어져 가는 가운데 고려 본국에서도 보급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그래서 퇴각하는 도중에 소와 말을 잡아 먹었으며 부대는 제대로 대오를 갖출 수가 없었고 그를 원망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거기다 지용수는 장수들이 일직선으로 이동하자는 말을 쌩까고 빙빙 돌아가는 해안선을 따라 움직였는데 이런 것들이 더욱 부대 내 불만을 키웠다. 결국 지용수도 이를 인식했는지 해변을 따라 이동하던 것을 지름길로 방향을 바꾸었는데 이때 추격을 대비해서 야영을 할 때는 반드시 변소와 마굿간을 만들어 놓게 했다. 그 덕에 나하추가 이틀간 추격을 해왔을때 "변소와 마굿간을 만든 것으로 보아 대오가 질서정연하니 습격하는 것은 무리"라며 퇴각했다.
11월 9일, 송참에 이르러서 나천서(羅天瑞)가 곡식 수백 석을 가져다 주어 군사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전투 당시 전사자보다 복귀시 추위와 굶주림에 죽은 병사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당시 여진족들이 고려인은 성을 빼앗고 지키는 걸 아주 쉽게 한다며 두려워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 뒤로는 지금까지 한민족의 영향력이 요동에 미치는 일은 없었다.
===================
병신같이 군량고를 불태움
남들이 공격해서 불태운것도 아니고 그냥 실수로....
우리가 퇴각한 이후
명태조님은 북원을 쫓아서 저저저 머나먼 원정까지 갔다 오시고
이후 명황제들은 만주 윗부분까지는 싹다 버리고 요동땅까지만 자기네 땅이라고 해서 방어하심....
아 진짜, 명이랑 같이 원나라 타도하는 동맹군 비스므레하게 밀어버릴때 요동땅까지만 딱 먹었었으면 좋았을 탠대... ㅠ.ㅠ
왜 그때 실수로 거기에 불을 지르냐고
- 이전글집에 대형나방이 들어왔다고 괘놀라버린 일본인 24.05.13
- 다음글일본인 해외여행 매니아들 사이에서 개꿀이라는 정보 24.05.13